분류 전체보기 (132) 썸네일형 리스트형 새로운 시작 2024년 미로(迷路)- 全文 미로(迷路) 김 대성 여명의 하늘이 열리고 있었다. 북한강의 지류를 더듬어 올라온 찬바람이 한겨울의 그것인 양 그 끝을 휘휘, 날카롭게 세웠다. 사정없이 새벽을 할퀸 바람 한 무더기가 골목 저쪽으로 사라져 갔다. 나는 견디지 못할 것 같은 요의를 느꼈다. 터질 듯 꽉 찬 방광에서 탈출한 오줌줄기가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세차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선술집 마당 어귀에서 단꿈을 꾸던 황구가 뜨거운 오줌줄기에 놀라 왝왝, 도리질을 쳤다. 그 순간 온평군 건축과 정 과장의 일그러진 얼굴이 환영처럼 튀어 올라 황구를 막아섰다. 나는 들고 있던 소주병을 황구를 향해 힘껏 던졌다. 황구가 본능적으로 몸을 피했다. 소주병은 뒤에 있던 가게 입간판에 보기 좋게 명중했다. 찌그러진 입간판에는 붉은 글씨가 유령처럼 떨고 있었.. 두물머리 애가(哀歌)- 全文 두물머리 애가(哀歌) 김 대성 집을 찾아가는 길이다. 나는 동네 초입에 차를 세운다. 좁았던 오솔길이 널찍하게 포장되어있다.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위로 고추잠자리의 군무가 아름답다. 무심한 바람결이 낙엽을 우수수 길 위로 뿌린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던가. 그렇다면, 두 번은 좋이 변했을 시간이다. 민주가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 같다. 어젯밤에 민주 꿈을 꾸었다. 꿈에 민주를 본 것은 그동안 없던 일이다. 워낙 꿈이 생생하여 긴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넓은 마당’에 가시나 봐요.” 뒤따라오던 파마머리가 아는 체를 한다. 장이라도 봐 오는지 손에 보따리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집이 아직 있습니까?” 파마머리가 내 얼굴을 힐끔 쳐다보더니 짐 보따리 하나를 슬쩍 맡긴다. “이 동네에서 제일 유명한 .. 잃어버린 마을- 全文 잃어버린 마을 김 대성 가을비가 추적이고 있었다. 아침부터 내린 가랑비는 마당을 온통 진흙탕으로 만들었다. 더구나 느닷없이 들이닥친 돌개바람이 볏짚이며 작은 나뭇잎 부스러기를 사방으로 흩뿌려 놓았다. 그렇지 않아도 콧구멍만 한 마당은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옥이는 섬돌 밑에 죽은 듯이 널브러져 꿈쩍을 하지 않았다. 군데군데 꿰맨 자국이 선명한 검정 통치마는 무릎까지 말려 올라갔고 누르스름한 무명적삼은 황토 흙으로 범벅이 되어 울긋불긋하였다. 치마단 밖으로 삐죽 내민 가늘고 흰 종아리가 간간이 움찔거리는 것이 살아있음을 말할 뿐이었다. 병태는 술이라도 한잔 걸쳤는지 불콰한 얼굴에 가시눈으로 옥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말해, 말하란 말이야.” 병태의 손에 들린 도끼가 가늘게 떨렸다. 푸수수한 머리칼은 칼끝.. 덫- 全文 덫 김 대성 국회의원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평소처럼 모든 것이 단조롭게 돌아가는 퇴근 시간이었다. 정호는 두꺼운 종이 박스와 신문지 몇 장으로 잠자리를 만들고 있었다. 전철역이 갑자기 술렁이기 시작했다. “기호 3번, 정 도영 후보입니다. 길 좀 내 주세요.” 어깨에 띠를 두른 일단의 사람들이 전철역 안으로 꿈결처럼 밀려 들어왔다. 정호는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희망약국 정 도영 약사가 그 사람들 중심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희망약국이 문을 닫은 것은 벌써 20년 전의 일이었다. 정 도영은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띠고 전철에서 내리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청하고 있었다. “제가 정 도영입니다. 여러분의 의견을 그대로 반영한 민생정치를 우선으로 하겠습니다. 밀어주십시오.” 정호는 영화를 보고 .. 도신(盜神), 출정하다- 全文 도신(盜神), 출정하다 김 대 성 오늘 중요한 작업이 있다. 나는 15년 전부터 이 일을 하고 있다. 짧지 않은 기간에 이십여 건의 크고 작은 작업을 했다. 그러나 이번처럼 나를 긴장시킨 일은 지금까지 맹세코 없었다. 오늘 작업은 그동안 내가 수행한 일 중에서 규모나 내용 등 모든 면에서 단연 으뜸이다. 이제 모든 준비가 무리 없이 끝났다. 다만, 작업 복장 선정 문제에 갈등이 있었을 뿐이다. 처음에는 양복을 입으려 했다. 그 집은 주로 양복 입은 사람들이 드나들기 때문이다. 한두 명이 아니라 늘 수십 명이 우글거린다. 모르긴 해도 옛날 도둑놈 소굴도 그랬을 거다. 어디 가나 구린내가 풍기는 곳에는 똥파리가 모이게 마련이다. 잘은 모르지만 그 집에도 뭔가 구린 구석이 있을 것이다. 그 냄새를 맡은 여러 .. 나비는 꽃을 꺾지 않는다 그대로 두지 그러시는가 그래, 그 자리에 그냥 두시게 탐냄은 순간일 뿐 채워져 남지 않는 것을 두고 봄이 더 오래가지 아니한가 내리시게 아득한 시림도 아픔도 그 흔한 황홀마저도... 훌쩍 세월 지나 후여후여 떨치고 가다가다 뒤 돌아봄에 문득, 속삭이는 바람 있어 그 내음 날리매 터.. 동행(同行) 동행(同行) 그런가 그러하시거든 어여 가보시게 내는 뭐 그리 바쁠게 없다네 마실 다니듯 설렁설렁 세상구경 해싸면서 천천히 따라가겠네 가다가 그늘 조은 곳 있어 작은 주막 반기거든 탁한 박주라도 좋으니 차가운 계곡물 속 풍덩너어 셔언하게 해두라 전해 주시게 주모 착하고 이쁘시.. 이전 1 2 3 4 ··· 1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