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물머리 애가(哀歌)
김 대성
<넓은 마당>집을 찾아가는 길이다. 나는 동네 초입에 차를 세운다. 좁았던 오솔길이 널찍하게 포장되어있다.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위로 고추잠자리의 군무가 아름답다. 무심한 바람결이 낙엽을 우수수 길 위로 뿌린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던가. 그렇다면, 두 번은 좋이 변했을 시간이다. 민주가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 같다. 어젯밤에 민주 꿈을 꾸었다. 꿈에 민주를 본 것은 그동안 없던 일이다. 워낙 꿈이 생생하여 긴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넓은 마당’에 가시나 봐요.”
뒤따라오던 파마머리가 아는 체를 한다. 장이라도 봐 오는지 손에 보따리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넓은 마당>집이 아직 있습니까?”
파마머리가 내 얼굴을 힐끔 쳐다보더니 짐 보따리 하나를 슬쩍 맡긴다.
“이 동네에서 제일 유명한 식당인 걸요. 동네 이름이 아예 ‘넓은 마당’으로 바뀌었다니까요.”
짐이 가벼워진 파마머리의 표정이 밝다.
“혹시, 집주인은 예전 그대론가요?”
“그럼요. 영구가 어릴 때부터 쭉 해온 걸요”
“네, 영구 할아버님은 건강하시죠?”
‘……?’
나를 쳐다보는 파마머리의 눈초리가 뜨악하다.
나는 군대를 제대 하고 나서 곧바로 취직을 했다. 입사 후 처음 맡은 업무가 경기도 지역에 있는 총판대리점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양평에도 제법 규모가 큰 대리점이 있었다. 때문에, 일주일에 한두 번은 양수리를 지나다녀야 했다.
마침 시집간 누이가 임신을 하여 잉어라도 한 마리 구해 주려고 수소문 끝에 찾아간 곳이 <넓은 마당>이라는 식당이었다. 집주인이 직접 배를 타고 나가 잉어 잡이를 했다. 잉어를 취급하는 집으로는 인근에서 꽤 소문이 난 집이었다. <넓은 마당>집은 두물머리 나루터에서 하류 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는 조그마한 산등성이 너머 외진 곳이었다. 신작로에서 좁은 산길을 따라 약 2km 정도 들어가면, 초가집 대여섯 채가 호숫가 군데군데 숨은 듯이 엎드려 있었다. 그것이 동네의 전부였다.
<넓은 마당>집도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초가를 얹은 작은 집이었다. 다른 집들과 차이가 있다면 안채와 바깥채로 나누어져 있어서 집 규모가 조금 크다는 정도였다. 바깥채에 딸린 텃밭을 농사를 짓지 않고 마당으로 쓰고 있었다. 축구장 반 정도 크기의 텃밭머리에서 보이는 팔당호의 모습은 말 그대로 한 폭의 동양화였다. 나는 그 뒤에도 가끔 두물머리에 들렀다. 동네가 조용한데다 경치까지 좋아서 잠깐씩 쉬어가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화창한 봄날이었다. 진달래가 군데군데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그날도 잠시 쉬어 가려고 두물머리에 들렀다. 구름 한 점 없는 높은 하늘이 잔잔한 호수를 그림처럼 안고 있었다. 나는 차 유리를 내린 채 비스듬히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저, 차에 불이 켜져 있는데요.”
터널을 지나올 때 켠 라이트가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민주가 눈앞에 서 있었다. 긴 머리를 두 갈래로 묶고 어깨 끈이 예쁜, 하늘색 치마를 입고 있었다. 첫사랑 그 아이와 너무나 닮았다. 나는 꿈결인가 하여 머리를 세차게 도리질 쳤다. 예상외로 당황해 하는 내 모습에 민주가 더 놀란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쉬시는데…….”
다소곳이 머리 숙이는 품새에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다. 민주는 두 손 가득 야채 바구니를 들고 총총히 몸을 돌렸다. 호숫가에서 야채를 씻어오는 길인 것 같았다.
“저, 잠깐만요.”
돌아보는 민주의 눈이 호수처럼 깊었다.
“혹시 이 동네에 식당이 있습니까? 아직 식사를 못했거든요.”
그대로 보내기에는 아쉬움이 있어 엉겁결에 한 말이었다.
“네, 우리 집이 식당이기는 한데, 혼자 드시기에는 음식이 마땅치 않아서…….”
수줍은 가운데 차분한 언행에 우아함이 넘쳤다.
민주를 따라간 곳이 바로 전에 잉어를 사갔던 <넓은 마당>집이었다. 식당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다. 이름은 식당이라고 붙였으나 손님은 거의 없었다. 낚시꾼들이 가뭄에 콩 나듯 가끔 찾아와 식사를 할 뿐이었다. 초가의 낡은 나무 대문에 크레용으로 쓴 ‘넓은 마당’과 ‘잉어 매운탕 합니다.’가 고작이었다. 주인이 그물을 걷으러 간 빈집에는 황구 한 마리가 옆으로 길게 누워 졸고 있었다. 인기척에 놀라 실눈을 뜨고 쳐다보던 황구가 별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중간 사립문을 지나자 안마당이 나왔다. 안마당도 꽤 넓었다. 스산한 바깥마당과는 딴판이었다. 마당에 티끌 하나 없었다. 나지막한 담장 아래로 길게 자리 잡고 있는 채소밭도 잘 가꾸어져 있었다. 종류도 다양하여 상추, 깻잎 등 십여 가지는 되는 것 같았다.
슬쩍 훔쳐 본 부엌에는, 그릇 하며 주방 도구가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넓은 장독대가 예전의 살림 규모를 짐작케 하였다. 아담하게 꾸며진 화단에는 봉숭아꽃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반쯤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안방에는 사진틀이 비스듬히 옆으로 누워 있었다. 작은 방으로 연결되는 툇마루가 사람 때가 묻어 반질거렸다. 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따님이신가 봐요.”
음식 차리는 민주의 손놀림이 오랫동안 몸에 밴 듯 거침이 없었다. 오뚝한 콧날에 자연스럽게 흐르는 턱 선하며 어디 하나 흠잡을 곳이 없었다.
“…….”
대답 대신 짓는 민주의 수줍은 미소가 해바라기 꽃을 보는 것 같았다. 걱정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없을 것 같은 해맑은 표정이었다. 가지런한 치아가 유난히 돋보였다. 갑자기 부엌이 환하게 밝아지는 것 같았다. 막상 아무도 없는 집에 둘만 있게 되자 쑥스럽기만 하였다. 시선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몰랐다. 큰 접시에 넘치게 담은 김치가 민주의 마음 씀씀이를 짐작하게 했다. 줄을 세워 놓은 듯 삼박 썬 솜씨가 정갈하였다.
“식은 밥이라도 드릴까요?”
마음이 고왔다. 나는 멋쩍음을 덜어 보려고 잉어 사간 사연을 더듬거리며 얘기했다. 조용히 듣기만 하는 게 원래 말수가 적은 것 같았다. 민주는 간간이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나는 라면 값을 던지듯 하고 밖으로 나갔다. 등이 온통 땀으로 흠뻑 졌어 있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 보려 하였으나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황조롱이 한 마리가 큰 날개를 펴고 유유히 허공을 활주하고 있었다. 푸른 하늘에 민주의 맑은 눈망울이 초롱거렸다.
남한산성에서 뻗어 내린 산자락 한줄기가 완만한 곡선을 뽐내며 호수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짙은 물안개가 그림처럼 호수를 감싸 안았다. 일교차가 크고 맑은 아침이면 두물머리는 천국이 되었다. 온천에서 김이 솟듯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언제 봐도 신비롭기만 하였다. 떠오르는 아침 햇살을 빨아들인 황금빛 물안개는, 말 그대로 한줄기 신기루였다. 봄을 캐는 여인들이 바다 같은 호숫가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산자락을 끼고 달리던 열차가 멀리 기적소리를 남기고 호수를 건넜다. 벌써 몇 번째인가. 나는 현지 출근을 핑계로 두물머리에서 새벽을 맞는 날이 잦아지고 있었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하지만,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민주가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민주를 만난 후 지금까지 한순간도 머리에서 떠난 적이 없었다.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민주를 만나야겠다는 마음밖에 없었다. 나는 그 뒤로도 몇 번을 더 찾아갔지만 민주는커녕, 사람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 봐도 볼 수가 없었다. 죽은 동네처럼 조용하였다.
시간의 흐름은 빨랐다. 그렁저렁 하는 사이에 어느덧 계절은 여름의 문턱을 넘고 있었다. 두물머리가 온통 녹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세월은, 온 세상 사람들 모두의 것이었던가. 그 흐름은, 애타는 내 마음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넓은 마당>집요?”
하릴없이 두물머리를 기웃거리다 나오는 길에 운 좋게 동네 아주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몇 번 만에 동네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이었다.
“말도 말아요. 그 집은 어쩌면 그렇게도 복이 없을까. 쯧쯧쯧.”
월남치마에 뱃살이 넉넉한 아주머니는 언덕 너머에 있는 논에 물을 잡으러 가는 길이라고 하였다.
“글쎄, 아들이 강물에 빠져 죽었지 뭐예요.”
“그런 일이 있었군요. 안 됐네요.”
목에 두른 수건으로 코를 훔친 월남치마의 말이 이어졌다.
“딸은 정신이 나가서 집을 나가버렸고…….”
“딸이요? 그럼, 지금 집에 있는 아가씨는 누군가요?”
“내 정신 좀 보게. 집을 나간 게 며느린가. 아, 참. 이런 얘기 하면 안 되는데…….”
월남치마는 말끝을 흐리면서 삽자루를 지팡이 삼아 서둘러 논길로 걸어갔다. 못할 얘기라도 한 것처럼 당황해 하는 기색이 역력하였다. 충격적인 얘기 때문에 내 머릿속은 온통 혼란스럽기만 하였다.
‘그렇다면, 민주는 누구인가. 딸인가, 아니면, 며느리인가…….’
“아찌. 누구야?”
나를 올려 보는 꼬마의 시선이 뜨악하였다. 입술을 덮고 있는 콧물을 훌쩍이다가 팔뚝으로 쓱 문질러 닦았다. 손 등과 팔목에 불에 덴 자리가 선명하였다. 두 눈동자가 반짝거리는 게 낯설지가 않았다.
“…….”
넓은 마당 주변을 서성인지 몇 시간 만에 어디선가 불쑥 나타난 아이였다.
“아찌, 벙어리야?”
멀뚱멀뚱 쳐다보는 내가 이상하게 보였나 보다.
“응, 근데……. 넌 누구니?”
“나, 영구.”
“참, 예쁘게도 생겼구나. 몇 살이니?”
크고 맑은 눈망울이 시리도록 투명하였다. 영구는 수줍은 미소와 함께 손가락 다섯 개를 조심스럽게 펴보였다. 꾀죄죄한 손이 앙증맞았다.
“다섯 살?”
“응.”
겨우 대답을 하지만 경계의 빛이 역력하였다. 식당에 가끔 찾아오는 낚시꾼들 외에는 밖에서 사람을 만난 적이 별로 없었던 거였다.
“영구야, 거기서 뭐하니. 빨리 집에 오지 않고.”
민주였다. 가슴이 요동을 쳤다. 마음을 들킨 듯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할 수 없었다. 잠깐 보인 민주의 얼굴이 두릅나무 뒤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는 조용히 가슴을 쓸어내렸다.
“응, 엄마.”
달음박질치는 영구의 등 뒤로 한 줄기 짙은 안개가 서렸다.
‘엄마라니…….’
아들은 물에 빠져 죽었다. 그리고 딸은 정신이 나가서 집을 나갔다고 했다.
‘그럼 민주가 결국 며느리란 말인가?’
호수 끝에서 시작된 검은 구름이 두물머리로 몰려오고 있었다. 비라도 한 줄기 올 것만 같았다.
염천을 타고 앉은 매미의 합창이 계속되고 있었다. 꽃들의 잔치가 사라진 자리에 칙칙하고 지루한 장마가 지나가고 있었다. 두물머리 언덕에서 둘러보는 사방은 철저한 녹색이었다. 36도를 넘나드는 질식할 것 같은 무더위가 며칠째 계속되고 있었다.
영구를 만난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가능하면 이쪽을 피해 다녔다. 밀려오는 자괴감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다. 딱 한 번의 만남이었지만 내 가슴에 남아 있는 민주의 자리는 크기만 하였다.
“어, 아찌다.”
영구가 우물가에서 등목을 하고 있었다. 가느다란 팔뚝에 매달린 작은 소름이 애처롭게 보였다.
“그래, 영구구나. 잘 있었니?”
슬그머니 내려놓는 덩치 큰 불자동차에 영구의 눈은 떨어질 줄 몰랐다. 나는 여름휴가를 얻어 두물머리 호숫가에서 며칠 쉬어 가려고 텐트며 취사도구를 준비해 갔었다. 방석같이 큰 호박잎이 나무 대문을 정겹게 감싸고 있었다. 바깥마당에 있는 큰 감나무의 그림자가 안마당까지 덮고 있었다.
불면의 밤이 길수록 나의 마음속의 민주는 커져만 갔었다.
‘운명이라면 맞으리라. 영구 엄마면 어떤가.’
내 생각은 굳어지고 있었다. 민주가 처한 여건 보다는 얼마만큼 사랑이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었다. 여기서 말면 큰 후회를 남길 것만 같았다.
“안녕하세요?”
여름인데도 무릎을 덮는 긴 치마를 입은 테가 단정하였다. 감히 근접하기 어려운 단아함이 보였다. 어색한 침묵을 고맙게도 풀벌레 소리가 덮어주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
겨우 꺼낸 한 마디에 예의 그 웃음으로 대답했다. 눈만 감으면 나타나는 수만 번도 더 그렸던 웃음이었다. 양쪽 볼을 파고드는 보조개가 예뻤다.
“지나다 가끔 들렀었습니다만…….”
몇 번을 준비했는데도 말이 잘 나오질 않았다.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애꿎은 머리만 긁었다.
“네, 저도 다녀가시는 거 몇 번 봤어요.”
민주는 겨우 입을 떼면서도 시선은 손등만 보고 있었다. 함초롬히 물에 젖은 손가락이 가지런하였다. 민주가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차라고는 거의 들어오지 않을 때였다. 차 소리에 내가 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아드님이 참 귀엽군요.”
말을 꺼내기가 조심스러웠다.
“아드님요? 아, 영구! 네…….”
미소를 지으며 민주가 말꼬리를 흐렸다. 민주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연민이 스쳤다. 마당 한구석에서 멀뚱멀뚱 이쪽을 지켜보던 황구가 세차게 꼬리를 흔들며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주인이 강에서 돌아오는 모양이었다. 당황해 하는 민주의 모습이 애처롭게 보였다.
“저녁에 잠깐 뵐 수 있을까요. 호숫가에 텐트를 쳤거든요.”
“…….”
스치며 지나가는 주인의 표정이 날카로웠다. 평생을 강가에서 보낸 연륜이 그의 얼굴에 깊은 골을 만들었다. 그의 어깨에 걸린 그물에는 대 여섯 마리의 잉어가 살아서 퍼덕이고 있었다.
“많이 기다리셨죠? 죄송해요.”
민주가 호숫가로 나온 것은 3일째 되는 날 초저녁이었다. 며칠 사이에 얼굴이 많이 수척해졌다. 밝던 얼굴에 시름이 보였다. 눈동자를 가득 메운 이슬방울이 곧 떨어질 것만 같았다.
“…….”
민주의 어깨가 소리 없이 들먹였다. 서러움이 켜켜이 쌓인 몸짓이 안쓰럽기만 하였다. 정적이 흘렀다. 쉽게 깰 수 없는 깊음이 있었다. 사람의 정에 갈증을 느끼고 있음이 한눈에 드러나 있었다. 민주는 외로웠던 것이었다.
“죄송해요. 아빠가 워낙…….”
‘아! 그렇구나. 아빠였구나. 오기를 잘했지. 그냥 포기했으면 어쩔 뻔했는가.’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산허리를 감고 있던 긴 여름 햇살이 어느덧 산 너머로 숨었다. 소곤거리듯 얘기하는 민주의 얼굴이 감미롭기만 하였다.
“그때만 해도 가난하기는 했지만 아쉬울 것도, 부러울 것도 없었어요.”
민주네 집은 3대째 두물머리를 지키며 살고 있었다. 1973년 팔당댐이 준공되기 전에는 농사를 짓고 살았다. 많은 땅은 아니었지만 민주네 네 식구는 먹고 살만했다. 가까운 강 그늘진 곳에 그물을 쳐 놓으면 심심찮게 잉어도 잡혔다. 민주네 집은 다행히 수몰은 겨우 면했다. 그러나 팔당댐의 준공은 민주네 집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댐에 물이 찬 첫해에 갑자기 민주 어머니가 이유 없이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던 것이다.
“물길이 니 엄니를 데려간 것이여, 물 기운이.”
민주 아버지는 댐의 물 기운 때문에 운명이 바뀌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이때부터 민주 아버지의 호수와의 보이지 않는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그전까지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얘기를 듣던 아버지였다. 그렇게 착하고 성실하던 사람이 한순간에 변하기 시작한 거였다.
“물이 겁나서 떠나면 지는 것이여. 물을 이겨야 하는 겨. 여기서 지면 어디 가서도 마찬가지여. 못 살기는.”
민주네 식구의 바깥세상과의 단절도 거의 같은 시기에 시작되었다. 집착에 가까운 그의 신념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잉어 낚시꾼으로 만들었다. 수몰된 몇 마지기 논 대신에 나온 보상금으로 조그마한 배를 장만하였다. 아버지도 아들도 철저하게 어부가 되고 있었다. 몇 번을 서울로 뛰쳐나간 아들을 그때마다 용케도 찾아서 데리고 왔었다. 서둘러 결혼도 시켰다. 호수에 묶어 두려 했던 것이다. 그래서 얻은 것이 영구였다.
“근데, 오빠가…….”
민주는 흐느끼고 있었다. 마음속 깊이 갈무리하고 있던 서러움이 한꺼번에 터졌으리라. 영구 돌 잔칫날이었다. 못 먹는 술을 밤늦도록 마시던 영구 아빠는 혼자서 배를 타고 호수로 나갔다.
‘한 많은 이 세상 야속한 님아, 정을 두고 몸만 가니 눈물이 나네.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말고, 한 오백 년 살자는데 웬 성화요.’
한 오백 년의 구슬픈 노래 가락이 가슴을 찢고 있었다. 그 후 영구 아빠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영구 아빠가 떠난 며칠 뒤, 1주일을 호숫가에 앉아 목을 놓던 영구 엄마가 홀연히 사라졌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던 날이었다. 서울 어디선가 산발한 머리로 걸어가는 모습을 봤다는 소문만 바람결에 들릴 뿐이었다.
민주 아버지의 물에 대한 증오는 극에 달하기 시작했다. 눈빛은 물론이고 성격 또한 딴 사람이 되어 있었다. 영구 아빠의 탈상을 하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술을 퍼마시던 민주 아버지가 광으로 쫒아 들어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누가 말릴 틈도 없이 작두로 스스로 한쪽 팔을 자른 거였다. 물을 떠나지 않겠다는 무언의 시위였다.
민주의 소리 죽인 울음이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가슴이 미어졌다. 이 여자라면 죽어도 좋다는 생각이 순간 머리를 스쳤다.
‘그래. 울고 싶을 때는 울어야지. 울고 나면 후련해지겠지.’
민주의 어깨를 감싸는 나의 손이 떨렸다. 움찔하던 민주의 몸이 곧 잠잠해졌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근했다.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호수의 어둠이 안개처럼 살포시 내리고 있었다. 이 시간이 지나면 세상의 끝이 올 것 같은 정적에 쌓였다. 끝을 물고 이어지는 풀벌레의 합창이 감미롭기만 하였다. 온 천지가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만 하고 어여 가자. 집에 가서 영구를 키워야지…….”
서울에서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던 민주가 아버지 손에 이끌려 두물머리로 온 것은 그해 겨울이었다.
“다 잊어버려라. 이젠 영구 에미로 사는 거여. 팔자려니 해라. 시집 가봐야 결국은 마찬가지여. 물길이 버려 놨어…….”
민주 아버지는 광기 어린 눈빛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 한 마디는 그대로 법이 되었다. 이후로 민주는 일체 두물머리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정말 미안해요. 이런 모습 보여 드려서.”
냉정함을 찾아가는 민주의 얼굴에 비장함이 흘렀다. 호수처럼 조용한 눈동자가 시리기만 하였다. 모든 것을 초월한 눈빛이었다. 시간이 멈췄다. 별이 쏟아지고 있었다. 움직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엄마아, 어딨어.”
영구였다.
“이젠 가봐야 해요. 한 번은 꼭 뵙고 싶었어요. 고마워요.”
또박또박 얘기하는 민주의 눈동자가 차가웠다.
‘이게 아닌데…….’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위압감 때문에 잡을 수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저, 이건 제가 보던 책입니다마는…….”
헤르만 헤세의 ‘지와 사랑’이었다. 얼마 전 감명 깊게 읽은 책이었다. 한 번 더 보려고 가져 왔으나 펴 보지도 못했다.
“네, 잘 간직할게요.”
마주친 두 눈이 파르르 떨렸다.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나 많은 눈이었다. 애잔함이 흐르는 잔잔한 미소가 아름다웠다.
“그럼, 다음에…….”
“…….”
축제가 끝난 자리처럼 민주가 떠난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그 후 나는 <넓은 마당>집을 열 번도 더 찾아갔었다. 그때마다 문밖에서 내치던 그였다. 민주는 당연히 볼 수 없었다. 민주 아버지는 낚시도 포기한 채 집을, 아니 민주를 지키고 있었다. 하던 어느 날 이었다. 웬일인지 그가 문을 열어준 것이었다. 허공을 응시하는 그의 눈이 번득였다. 나는 아직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 적이 없었다. 슬쩍 훔쳐본 그의 눈에서 순간, 불꽃이 튀었다. 섬뜩한 느낌에 나는 황급히 눈을 내리깔았다. 하나뿐인 그의 왼팔이 부르르 떨렸다.
툇마루 바닥에서 느껴지는 늦가을의 냉기가 고스란히 몸으로 전달되었다. 나는 사발 가득 막걸리를 따랐다. 갈수록 주전자의 무게가 가벼워졌다. 슬그머니 술잔을 그의 앞으로 밀었다. 마당 한구석에서 졸던 황구가 간간이 이쪽을 힐끔거렸다. 고요하였다. 질식할 것 같은 정적이 흘렀다.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감나무 잎사귀가 애잔해 보였다. 재떨이에는 주인 잃은 담배 연기가 춤추듯 연방 피어오르고 있었다. 필터까지 타들어간 담뱃재가 버티다 못해 아래로 목을 떨어뜨렸다. 안방에서 목 쉰 뻐꾸기가 졸린 듯 세 번을 울었다. 그렇다면, 벌써 두 시간은 좋이 흐른 거였다.
“몇 번을 얘기해야 알겠는가. 민주는 여기 없어”
그는 막걸릿잔을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그 서슬에 주전자가 기우뚱거리다 우는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손등으로 입을 훔친 그가 다짐하듯 한 말이었다. 그의 입이 다시 얼어붙었다. 60평생을 강-지금은 호수지만-에서 어부로 살아온 그였다. 그의 얼굴은 온통 주름이 덮고 있어 사람의 그것이 아닌 듯도 하였다. 탈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하나, 증오가 서려 있는 눈빛은 살쾡이를 닮아 이글거렸다.
“다시는 오지 말어. 민주는 없어, 죽은 사람이여.”
그는 엉금엉금 기어 방으로 들어갔다. 탁, 하고 방문 닫히는 소리가 나의 가슴을 후려쳤다. 그는 이제 더는 밖으로 나오지 않을 것이었다. 한 무더기 바람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정말 오랜만에 오시나 봐요. 영구 할아버지 죽은 게 언젠데.”
파마머리의 너스레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영구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럼요, 우리 손자 태어날 때니까 죽은 지 벌써 20년이 넘었네요.”
“…….”
언덕이 마지막 숨을 멈추는 곳에서 멀리 호수가 보인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상쾌하다. 하늘 끝과 닿아 있는 호수가 햇볕을 받아 은가루를 뿌려 놓은 것 같다. 호수는 같은 호수건만 물은 옛 물이 아니리라. 동네 초입부터 많은 집이 들어서 있다. 그동안의 변화가 피부로 느껴진다. 산을 등에 진 호숫가 군데군데 그림 같은 집들이 들어앉아 있다. 눈에 잘 띄지 않던 정자나무 몇 그루가 하늘을 가리고 있다.
‘많이도 변했군. 그래, 짧은 세월이 아니었어.’
민주는 그날 이후 볼 수가 없었다. 그 뒤에 몇 달을, 일주일에 한두 번씩 두물머리를 기웃거렸다. 민주는 더는 두물머리에 없었다.
‘그렇게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그러저러 보낸 세월이 20년이 넘었다. 사랑 놀음에 매달리는 것이 허망하게만 생각되었다. 열심히 앞만 보고 살아왔다. 나는 젊음과 청춘을 철저하게 삶에 투자했다. 푸르다 못해 차갑기까지 한 하늘이 머리 위로 내려앉는다.
‘얻은 게 뭔가. 지금 내게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
넓은 마당은 시멘트 포장을 하여 주차장으로 쓰고 있다. 날아갈듯 한 기와집이 세월의 무게만큼 무겁다. 안채는 증축을 하고 바깥채는 새로 지은 것 같다.
“이상하네. 왜 영업을 안 하지?”
파마머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큰일 났어요. 영구 엄마가 죽었어요.”
궁금하다며 집 안으로 들어갔던 파마머리가 구르듯이 뛰쳐나왔다.
‘민주가, 민주가 죽다니.’
가슴이 산산조각이 난다. 억누르고 있던 그리움이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진다. 고목이 된 감나무도 숨을 죽이고 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영굽니다.”
조경 석으로 만들어 놓은 돌 위에 털썩 주저앉아 있는 내 앞에 건장한 청년이 공손히 다가왔다. 반듯한 이목구비에 맑은 눈동자가 인상적이다.
“저 기억 하시겠습니까?”
‘잘 자랐다. 티 없이 자랐구나. 민주의 인생이 담겼으리라.’
“제 첩니다.”
다소곳이 인사하는 여인의 모습에서 민주를 본다.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그랬구나. 그래서 민주가 마음을 놓고 갔구나.’
“어머님께서는 새벽에 운명하셨습니다. 건강하셨는데…….”
북받치는 설움 때문에 말끝을 잊지 못한다. 돌연사라고 한다. 인생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나 보다.
‘반드시 찾아오실 게다. 꼭 전해 드리도록 해라.’
운명이라도 직감한 것이었을까? 민주가 며칠 전에 영구를 불러 유언처럼 한 말이다. 비단 보자기로 정성스럽게 싼 모양새에서 민주의 마음이 느껴진다. 마지막 책장에 있는 나의 서명이 선명하다.
<늦은 눈 오는 날에…….>
책이 많이 낡았다. 민주가 몇 번을 읽었나 보다. 곱게 접은 한 통의 편지가 책갈피 속에 애처롭게 숨어 있다.
<살아 움직이는 자유로움과 세상의 온갖 아름다움, 그리고 속박 받지 않는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고통스러운 대가가 따르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모릅니다.
정신과 자연, 이상과 현실의 상반된 개념이 운명이라는 명제 앞에서는 힘없이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무지개에도 양끝이 있듯 둘 다 만족할 수는 없는 것이 인생이기에 저는, 저에게 주어진 길에 순응하며 살았습니다. 평생 자신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고 신에게 몸을 맡기고 살아가는, 이지적인 나르치스의 삶을 동경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의 운명을 벽처럼 막고 있던 아버님께서 돌아가신 후 갈등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길에 머물러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제 삶의 최상의 목표였습니다. 저는 제가 선택한 삶의 길에 아무런 후회와 미련이 없습니다.
평생토록 그리워할 수 있는 즐거움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에겐 소중한 추억이었습니다. 행복하십시오.> ■
061024淸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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