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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隨筆)

사모곡(思母曲)

(수필 200*21매)

사모곡(思母曲) 


 

 

                                                                    

 말복도 지나 곧 처서가 다가오고 있는데 아직까지 늦더위는 끝이 나지 않을 것처럼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오락가락 뿌려대는 굵은 빗줄기 속에서 계절의 끝을 잡은 늦은 매미의 처연(悽然)한 울음소리에 문득,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인자하신 어머님의 고운 미소가 손에 잡힐 듯 아픈 가슴으로 다가온답니다.

 그 무더운 여름날, 에어컨은커녕 선풍기조차도 사치스러웠던 그 시절 여름날에도 더운 게 당연 하시다면서, 천천히 부채 부치시며 끝내 흐트러진 모습 보이지 않으시던 어머니!

 아무리 큰일 있어도 크게 놀라지 않으시고 좋은 일 있다 하여 호들갑 떠는 법 없이 오직 고운 미소 살포시 지으시던 님의 곧은 모습이, 지금 오십 줄을 바라보는 저의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아직도 커다란 교훈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님은 이 시대의 마지막 양반집의 큰 며느리셨고, 어머니다운 어머니셨으며 한 마리 아름답고 고운 학(鶴)이셨습니다. 맵시 있는 모시 저고리에 참빗으로 곱게 빗어 넘겨 쪽진 머리, 그 빈틈없던  님의 모습이 오늘따라 더욱 더 그립습니다.

 그동안 몇 번이고 님 그리움에 붓 들어 달래려 하였으나 그 시린 연민들이, 크고 벅찬 그리움으로 다가와 눈물 되어 앞을 가려 끝을 보지 못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라는 세 글자를 마저 적기도 전에 가슴이 미어지고 님 떠올려 생각만 해도 눈앞이 흐려짐은 어인 까닭인지요.

 님 가신지 어언 7년 여!

 불면 날아갈까 놓으면 꺼질세라 애지중지 키워온 아들 못 잊어 어떻게 가시었나이까. 어머님의 빈자리가 아직도 이토록 크게 남아 있음은, 세월이 흐를수록 그 자리 커짐은, 이 못난 자식의 불효가 그 만큼 컸던 것이 아닐는지요.

 영원히 가시는 길, 그냥가면 남은 자식 오래도록 슬퍼할까 염려되어, 그 슬픔에 몸이라도 상할까 두려워, 정 떼고 가시려고 외로운 중풍 치매에 5년의 고통 속에서 님은 가셨습니다. 잠깐의 그 고통 영원 일까 봐, 그런 모습으로 몇 십 년을 계실까 봐, 정 떼고 가시는 길 편히 모시지 못하고, 떠 밀어 보낸 듯 아픈 가슴으로 보내드린  못난 자식, 이 죄인의 마음은 한없는 후회와 터질듯 한 아쉬움으로 늘 괴로워하고 있답니다.

 돌이켜 보면 긴 인생의 여정 속에서 늘 단아함과 인자로움으로 계셨고, 숱한 사연 굽이굽이 어려움과 고통 어이 없었겠습니까마는 단 한 번도 품위와 자애로움의 미소를 잃지 않으셨던 어머니!

 오늘따라 어머님이 더욱 그립습니다. 부드러운 님의 미소가 더 더욱 보고 싶답니다.

 흔들리지만 부러지지 않는 강인한 갈대처럼, 어머님은 그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강한 힘과, 깊음과, 넓음을 가지셨고 모든 것을 포용하시며 어떤 어려운 문제들도 미리 알고나 계셨듯이 쉽게 해결해 주시던 것이 저의 가슴 속에 남아 있는 어머님의 모습이십니다. 오늘 님과 더불어 아련히 떠오르는 추억의 편린들을 찾아 같이 나누려함에 눈물이 앞섬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는지요.

 어린 시절 새벽이면 언제나 정화수(井華水)에 촛불 밝히시고 자식위해 기도 하시던 그 마음 그 정성을, 떠나실 때까지 평생을 간직하시며 살아가셨고, 큰 파도, 세찬 바람에도 의연하게 대처하시며, 늘 같은 모습으로 같은 자리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셨습니다.

 언제나 필요한 자리를 어떻게 그렇게도 잘 알고 거기에 늘 계셨나이까. 학교 파하기가 무섭게 달려간 집에 님 계시지 않으면 세상 모든 것이 비어 버린듯하던 어릴 때의 그 크기만 하시던 님의 자리를, 머리 굵어 간다고, 이제 다 컷 다고, 혼자 커온 것처럼 님의 자리 작게 보고 어머니 멀리할 때 님의 마음이 어떠하셨겠습니까. 금쪽같은 귀한 자식 커 간다는 대견함으로만 넘겨 버릴 수 없는 서운함과 허전함이 님에게는 없으셨는지요.

 버들가지 움트는, 온천지가 푸른 옷으로 갈아입던 파란 봄이면 손수 내리신 노란 병아리로 하여 무한한 꿈 키우게 하셨고, 별이 쏟아질 것 같은 여름밤이면 멍석 깔아 모깃불 피워 들려주시던 하늘동네 별님들 얘기로 하여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어린 시절을 보냈었지요. 님이 주신 그때의 꿈과 사랑, 소중한 희망의 씨 살아있어 지금의 못난 자식 의지하고 지탱하는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그 맛있는 닭고기를 어머님께서는 정말로 못 드시는 줄만 알았습니다. 그 많던 닭들을 자식 먹게 하려고, 당신 드시는 건 아깝고 자식 입으로 들어가는 것만 보기 좋아하신 어머니. 아! 어머니, 당신은 닭고기를 못 드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한량없는 사랑에 지금도 귀 기우려 시린 가슴을 적신답니다. 이 나이 되도록 이 몸 건강한 건 다 님의 배품 있었음이라.

 일찍 시작된 못난 자식의 방황의 길 길어 깊은 속 끓이시길 수년 여!

 묵묵히 기다리시는 님의 마음 잿빛으로 변했을 터. 어설픈 반항에서 이어진 타 지역으로의 진학에, 두 말도 안하시고 님의 목숨같이 아끼시던 소중한 전 재산인 몇 마지기 땅뙈기 팔아 그것도 유학이랍시고 떠나는 길목에서…….

 철없는 아들 앞세우고 바리바리 이고 지고 수십 년 정든 고향, 정든 집 뒤로하고 고개 넘으시던 어머님의 마음은, 그 언덕에서 고향집 뒤돌아보시며 한숨 섞인 미소 지을 때의 어머님의 마음은 과연 어떠셨습니까?

 이제 저의 머리에도 서리 내리고 옛날의 저처럼 새끼들 커 옴에 어머님의 깊고 넓으신 큰마음 들이, 감히 저로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크고 깊은 사랑들이 새삼 보이더이다.

 마흔다섯 적지 않은 나이에 어렵게 얻은 막내 자식, 삶의 모든 것을 그 자식 위해 바치셨고, 오매불망(寤寐不忘) 못난 자식 위해 가슴 저미는 서러움들 고운 미소로 갈무리 하시고 큰 걸음 내 디디신 어머니!

 오늘 어머님이 한 없이 그립습니다!

 양반 댁 부잣집 맏며느리로, 마님으로만 계시던 님에게 낯설고 물 설은 객지 생활 십 수 년은 인고의 세월이 아니었을 런지요. 한 칸 방이 무슨 말이랍니까. 남의 눈칫밥을 어디 상상이나 하셨겠습니까. 그 길고 모질었던 세월에도 내 기억하기로 단 한번의 질책(叱責)이나 꾸중 없이 지켜만 봐 주시던 어머님의 속은 다 타버리지 않으셨는지요.

 그나마 늦지 않게 대학의 문을 두드릴 수 있었던 것도 못난 아들 믿고 기다려주신 님의 은덕 있었음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서울 행 열차에서 아들 손 꼭 잡고 하시던 님의 말씀 아직도 가슴 깊은 곳에 눈물로 남아 있답니다. 너는 할 수 있다며 지금부터가 시작이니 용기를 가지라 하셨습니다!

 대학생활 4년인들 어디 마음 편하셨겠습니까. 오죽하면 저에게 들개라는 별명을 지어 주셨습니다. 평생을 기다리시며 애 태우시던 님은 그렇게 가셨습니다. 흔히 말하는 호강은 늦게 자식 둔 죄 아닌 죄로 하여 생각지도 못하시고, 가시는 그날까지 가슴 죄이며 사셨습니다.

 어머니!

 목이 메어 다시 한번 불러봅니다. 힘들고 어려움 있을 때 달려가 뵐 수 있는 어머님 가까이 계심에 그나마 위안을 삼는답니다. 님은 가셨지만 마음속에 있는 나의님은 아직 보내지 않았습니다. 아마 못난 자식 님따라 가는 그날까지 영원히 저의 마음의 등불로 계실 것입니다.

 작은 집 지하 셋방에서 서울로 이사 오시면서 얼마나 좋으셨으면 놓았던 정신을 잠깐이라도 찾으셨겠습니까.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으시겠다며 사흘 만에 찾으셨던 정신 다시 놓으신 후 몇 개월 만에 님은 가셨습니다. 억지로라도 놓지 않았던 아들 위한 정신의 끈을 이제 살만하다 느끼시면서 스스로 놓아 버리신 것은 아니신지요.

 이제 편안한 영면(永眠)의 길로 가시옵소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다던 님의 손자, 손녀 이제는 다 커서 곧 제몫을 다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님이 저에게 주신 사랑의 만분의 일도 자식들에게 주지 못했지만, 그래도 부모 위하는 마음과 남매간의 정이 남다른 걸 보면 님이 뿌려 놓으신 사랑이 이제 열매되어 돌아오는 것이 아니가 하고 다시 한번 고개 숙인답니다.

 님은 어떻게 그리도 많은 사랑을 가지셨더이까. 손자, 손녀에 대한 님의 사랑 또한 각별 하셨음이니…….

 이제 이 못난 아들도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더 길답니다. 나이가 들수록 어머님 그리는 정 더욱 깊어짐에, 받았던 사랑 돌려 드리지 못함에, 그 정 님이 사랑하는 저의 자식에게 돌려도 되겠는지요.

 아! 필설(筆舌)로 다할 수 없는 깊은 정 드리오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




05/08/23 淸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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