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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隨筆)

망상어의 출산(出産)

<수필 200*13매>

  망상어의 출산




 며칠 전 TV에서 ‘독도’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그 내용 중에 새끼 낳는 물고기인 망상어의 출산 장면이 있었다. 종족 번식과 새 생명 탄생을 위해 한 몸 희생하는 숭고한 어미 망상어의 모습에서 처절하면서도 아름다운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문명의 발달과 복잡한 사회구조 속에서 간과할 수 있는 어머니라는 그립고 정감 어린 이름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좋은 작품이었다.

 망상어는 농어목 망상어 과에 속하는 몸길이 25cm 정도의 바닷물고기로 우리나라 연안이나 일본, 중국 연해지방 등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정약전의 ‘자산어보’는 ‘큰놈은 한자 정도이고 모양은 도미를 닮았으나 높이는 더 높고 입이 작으며 빛깔이 희다, 태에서 새끼를 낳는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어류가 종족을 번식하는 방법은 새끼를 낳는 태생과, 알을 낳는 난생 등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망상어는 어미 뱃속에서 자란 치어가 몸 밖으로 산출되므로 완전한 태생 어라 할 수 있다. 망상어의 알은 착란 후 어미 뱃속에서 5~6개월 동안 보호받으며 성장한다. 그 후 어미로부터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받고 자란 새끼들이 몸 밖으로 산출되는 것이다.

 이렇듯 체내 수정을 통한 특이한 종족 번식의 행태는 비록 자궁 없이 태에서 자라 항문으로 나오는 방법상의 차이는 있으나, 잉태하여 10개월 동안 어미 뱃속에서 자란 후 태어나는 인간의 그것과 대동소이하여 더욱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망상어의 출산이 아름답지만 처절한 것은 새끼 망상어의 태어남이 곧 어미의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사실 때문이다.

 새끼들을 바깥세상에 내 보내려고 혼신의 힘을 다한 어미 망상어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서서히 죽어간다. 어미 몸을 빠져나온 새끼는 본능적인 생존 법칙에 따라 떼를 지어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난다. 어미 망상어라 하여 어찌 섭섭함이 어찌 없겠는가마는, 제 갈 길 찾아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았으면 하는 것이 마지막 눈 감는 어미의 바람이리라.



 새끼에 대한 어미의 사랑과 애정은 본능적이고 맹목적이다. 어떠한 보상도 바라지 않는 일방적인 희생이다. 그래서 어미라는 이름은 늘 아름다움과 그리움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현대의 각박해진 사회구조는 이러한 부모의 헌신적이고 아낌없는 사랑을 당연하게만 생각하고 너무 쉽게 간과하고 있다. 모정이 세월과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닐진대, 어미 망상어의 출산이 주는 교훈은 교훈하는 바가 크다.

 생명 공학의 발달로 인간도 시험관에서 키워지는 시대가 되었다. 어머니와 아기의 따뜻한 교감이 오가고 고귀한 생명이 면면히 이어지는 신성한 탯줄마저도 퇴화할 것이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자기중심적인 이기심 때문에 여자이기에 누릴 수 있는 아이 낳는 소중함과 행복을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한 실정이다. 갈수록 결혼 적령기라는 개념이 흐려지고 있으며 출산 연령도 늦어지고 있다.

 ‘미래를 품은 당신은 여왕입니다!’ 이것은 어느 회사의 현수막에 적힌 글귀다. 산모를 여왕처럼 세심하게 보살펴서, 모든 여자들이 ‘아이 많이 나아서 행복해요.’라고 말하게 하자는 것이다. 이제는 행복하고 건강한 산모 만들기가 개인의 문제에서 사회적인 숙제가 되었다.

 ‘눈에 넣은 부모’라는 제목의 훈훈하면서도 눈시울 붉어지는 감동의 이야기가 신문에 실렸다. 어릴 때 외국으로 입양된 처녀가 청각장애와 더불어 ‘어셔 증후군’이라는 병 때문에 시력까지 잃게 될 위기에 처하자, 조금이라도 시력이 남아 있을 때 부모를 만나려고 고국으로 찾아온 것이다. 그 정성에 하늘도 감복하여 기적처럼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오매불망 그리던 어머니의 모습을 생의 마지막이 될 눈 속에 넣을 수 있었다고 한다. 긴 세월 잃어버렸던 피붙이 만난 어머니와 꿈에 그리던 어머님의 모습을 본 처녀의 마음은 과연 어떠했을까. 온 세상 품에 안은 큰 기쁨과 희열 있었으리라.

 어미 망상어의 안타까운 마지막 호흡에 몇 년 전 세상 등지신 어머님 모습 떠올라 남몰래 눈시울 붉힌다. 늘 같은 자리에서 인자한 미소 머금으시고, 한없이 부드러웠지만 때론 강철보다 더 강했던 그리운 어머님 모습이 오늘따라 더 가까이 다가온다.

 ‘어버이 살아 실제 섬길 일란 다 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송강 정철의 시조가 새삼 가슴을 저미게 한다.

 바람 선선히 부는 낚시하기 좋은 계절이 돌아왔다. 저수지의 붕어처럼 고운 눈매로 항상 즐거움을 주는, 입 작은 예쁜 고기인 망상어! ‘바다의 붕어’라 불리는 새끼 낳는 물고기인 망상어 낚시를 산란기에는 가급적 삼가, 그들의 어렵고도 독특한 종족 번식을 도와주는 것이 어떨까.

 만물의 영장인 인간도 엄두 내기 어려운 모진 산고 속에서 태어난 소중한 그들이 아니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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