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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隨筆)

가을 단상

 

   가을 단상



 창 밖에서 들려오는 귀뚜라미의 성화에 못 이겨 오늘도 부스스 졸린 눈 비비며 아침을 맞는다. 기다렸다는 듯이 멀리서 들리는 참매미의 울음소리와 더불어 며칠째 자연이 주는 자명종 소리에 잠이 깬다. 계절의 끝을 아쉬워하는 매미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귀뚜라미는, 둘 다 계절의 전령이면서 같이 공존할 수 없는 인연 속에 조화를 이루고 있음이 사람 사는 그것과 닮아 가을의 문턱을 새삼스럽게 만든다.

 의지와 상관없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나이 먹고 밀려나야 하는 우리의 현실이, 귀뚜라미에게 자리 내어 주고 물러나는 매미의 그것과 닮아 쓸쓸함을 금할 길이 없다. ‘가을이 오는데, 모든 것이 넉넉한 좋은 계절이 다가오는데 맞을 생각을 않고 무엇을 하고 있느냐?’라고 묻고 있는 것 같은 귀뚜라미 울음소리에 문득 발걸음을 멈춘다.



 정녕 가을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인생의 가을로 들어서는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걸 맞는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모든 것을 토해내고 죽어가는 저 매미처럼 절실하게 살아왔던가. 어떻게 사는 것이 후회 없는 삶이고, 성공한 인생은 무엇이며, 그 기준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최선을 다하는 삶이 아름다운 것이리라! 분수를 알고 자기 자리 지키며 살아가면서, 작은 만족에도 행복할 줄 아는, 희망과 꿈 잃지 않고 묵묵히 맡은 바 책임을 다 하고 사는 것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닐까.

 눈물과 땀을 바탕으로 한 걸음씩 걸어 올라가 정상에 이른 산악인이나, 주저앉고 싶은 달콤한 유혹 뿌리치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 결승점을 통과한 마라토너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은, 그들이 목적을 성취하기까지 많은 눈물과 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노력을 알기에 힘찬 박수를 아끼지 않음이리라. 논리의 비약일 수도 있겠으나 헬기를 타고 정상에 올랐다거나, 차를 타고 결승점에 다다른 마라토너에게 박수를 보내는 일이 있겠는가. 목적을 달성했다는 결과 치(直)는 같더라도 전자의 그것이 더 아름답고 존경스러우며 소중한 것은, 그들의 피와 땀과 노력으로 만든 결실이기 때문이리라.

 무엇을 하였고 어떻게 살면서 이룬 것이든가를 막론하고, 현재 가진 것의 많고 적음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는, 결과만 주목받는 세상이라 괴리(乖離)를 느끼게 하는 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원인 없는 결과는 없는 것이니, 그 과정이 생략된 성공이, 과연 마음으로 뿌듯한 희열 느끼는 진정한 의미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가진 자들을 무조건 나쁜 쪽으로 매도하는 시각을 경계하고자 한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여 이룩하고 올라선 자리에 있는 아름답고 떳떳한 부자는 지극히 존경과 선망의 대상임을 밝힌다. 그렇게 하여 그 위치에 오른 부자는 버는 것 못지않게 아름답게 쓸 줄도 아는 것을 우리는 주변에서 많이 봐 오지 않았는가.

 작은 바람 있다면 버는 과정이 떳떳치 못하였거나 힘 안들이고 쉽게 많은 것을 얻은 축복 받은 경우라면, 저 세상 갈 때 많은 재산 다 가져가지 못할 것이라면, 힘없고 늙어 후회해도 소용없으니 하루라도 젊었을 때 멋있고 보람되게 쓰는 방법에 대하여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30여 년 전 서울로 올라와 학교 다닐 때, 달동네 제일 꼭대기 작은 집에 세 들어 산 적이 있었다. 평화시장에서 야간 경비일 보는 남편과 부인, 어린 남매로 구성된 단출한 가족이었는데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 것은 집안에 웃음소리가 늘 떠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부부간의 사랑도 그러려니와 휴일이면 부침개에 소주 한잔 하면서도 꼭 앞뒷집 불러서 나누어 먹으려 하는 넉넉한 마음이 지금까지도 훈훈함으로 남아 있다. 어린 마음에도 행복이란 이런 것이 아닐지 생각하곤 했었는데, 세월이 흘러 가정을 꾸리고 세파에 시달리며 흰머리가 더 많아진 나이가 되어서도, 가끔 그 시절 행복하고 단란했던 그 가족이 생각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렇다면,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행복한 인생이란 어떤 삶을 말하는가? 육신이 편안하고 배부르며, 돈 많이 벌어 즐기면서 사는 것만을 의미할까. 아니면 가진 것 적어 힘들고 어렵더라도, 따뜻한 정 나눌 수 있는 포근한 가족 옆에서 정의 의미를 느끼면서 사는 인생일까. 과연 어떤 삶이 더 행복할까. 물론, 두 가지를 모두 만족하는 삶이랴…….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아오면서 좋은 일 궂은 일 어디 한두 번이었겠는가. 뜬 구름도 쫓아보고 열지 못할 문도 여러 번 두드려 보았으나 세상이 만만하기만 한 것이 아닌 것이기에, 작은 이룸에 환희 하였고, 끝없을 것 같은 추락에 좌절하며 오열하기를 수차례! 왜 그렇게 일비일희(一悲一喜)하였었는지 모르겠다. 이제 와 생각하면 다 부질없었음인데…….

 하지만 그러한 경험들이 쌓여, 세상 보는 눈이 조금씩 열리게 되고, 비록 가진 것 적고 초라할지라도,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리라. 그래서 젊어서 고생 사서라도 하라는 옛 말씀이 있었나 보다.



 안분지족(安分知足)의 현인이 되라는 말을 다시금 떠올려 본다. 여기까지 살아온 길 뒤돌아봄에 후회와 회한이 왜 없겠는가마는, 이만큼이라도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살고 있음에 모든 것이 고마울 뿐이다. 든든한 집사람 옆에 늘 같은 모습으로 있음에 고맙고, 사랑하는 자식들 모나지 않게 이만큼이라도 건강하게 잘 자라 주고 있으니 이보다 더한 축복이 있겠는가!

일체유심조.(一切有心造) ‘모든 것은 사람의 마음먹기에 따라 달려 있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 가을이 풍성한가, 그렇지 않은가는 곧 나의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다. 가치 판단의 기준을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인생이고 삶이고 행복일진대, 천금이 있다 한들 스스로 만족치 못하면 그 마음 가난한 것이 아니겠는가.

 9월 1일. 또 새로운 한 달의 시작이다. 이제 나의 가을을 알았으니, 앞으로는 남은 인생길 걸어가다 문득 뒤 돌아 지난날 둘러보아 후회하지 않을 여유로운 길이었으면 좋겠다. 올 가을은 유난히 높고 푸른 하늘일 것만 같다.


   

 

 

05/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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