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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日記)

봄 마중

 

 

대구 달성군 다사읍 세천리. 22일 오후.

따사로운 햇살, 볼을 스치는 바람이 한가롭다.

메리, 도꾸, 또리... 동네 강아지 다 모여 봄나들이다.

자, 가자. 오늘은 저 멀리 도로 건너 개울까지다.

꽃망울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움찔, 한다.

2차선 국도, 씽씽 달리는 차들로 위태롭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들이 도로를 가로지른다.

순간, 운명처럼 화물차가 달려든다. 아-악!

이럴 수가... 눈 깜빡할 사이, 손 쓸 틈이 없다.

한 마리 강아지가 풀썩, 쓰러진다. 메리다.

메리가 숨을 몰아쉰다. 도꾸야, 내 몫까지...

도꾸의 가슴이 덜컹, 떨어진다. 어떤 친군데...

도꾸가 쓰러진 메리를 물고 흔든다.

일어나 인마, 일어나... 개새끼로 태어난 것도 서러운데...

메리가 말이 없다. 도꾸가 안타까움으로 글썽, 한다.

차가 휙, 지나간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렇게...

그래도 생명인데... 개새끼들... 도꾸가 이를 꽉, 문다.

그래, 너의 마지막 길 내가 지킨다. 편히 눈을 감으렴...

도로 중앙선. 도꾸의 두 발에 힘이 팍, 들어간다.

순하기만 하던 또리, 지나가는 차 범퍼를 물어뜯는다.

메리를 친 차를 닮은 화물차가 화들짝, 이다.

그냥, 그렇게 시간이 간다. 서녘 하늘이 붉게 물든다.

하지만, 그들은 떠날 수가 없다. 친구, 곁에 있기에...

질주하는 차, 무섭지 않다. 그들은 목숨을 건다.

그들은, 목숨 걸고 친구를 지키는 그들은

우리가 흔히 개새끼라고 부르는

그래, 그들이었다...




한겨레신문에서...

07/02/24 淸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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