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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日記)

아비 새

 

 

부산시 금곡동, 고은봉(71) 할아버지.

45년간 잡았던 버스 핸들을 놓은 지 오래다.

잘 보이지 않는 눈(시각장애 6급)만큼 삶이, 다단(多端)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고영희, 40), 있다.

뇌 병변 중증 장애를 가진 사십대의 딸이다.

백일 때 뇌수막염을 앓았던 그녀, 혼자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말은 고사하고 손끝 하나 꼼짝할 수 없는 그녀...

바깥세상 구경은 꿈결처럼 아련한 남의 일.

모든 대화는 아버지 즉, 할아버지의 눈을 통해서다.

부녀는 눈의 깜빡임을 통해 의사소통을 한다.

딸의 식사는 물론 대소변 수발에 목욕까지... 40년째다.

깜빡이며 쳐다보는 딸의 눈, 샛별처럼 이쁘다.

딸의 장애를 알았던 먼 그날, 할아버지는 정관수술을 한다.

또다시 장애인 자식 낳을까 두려웠던 할아버지.

오로지 너를...  해서, 할아버지는 의지할 자식도 없다.

‘그래, 널 위해서라면...’ 할아버지가 이를 악문다.

‘아빠가 주는 밥 아니면 난 절대 안 먹어.’

눈을 흘기는 딸의 눈매가 별처럼, 꽃처럼 아름답다.

‘응, 그래.’ 할아버지가 밥을 씹는다. 딸의 눈이 반짝, 한다.

‘이쁜 딸아, 아 하렴.’ 딸의 입에 씹은 밥을 넣어주는 할아버지.

딸의 입이 오물거린다. 할아버지 얼굴이 미소로 곱다.

‘뇌에 찬 물, 돈 때문에 빼주지 못하는 못난 아비를 용서해다오.’

배불러 잠든 딸을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눈에 이슬이 반짝, 한다.

‘남은 생이 얼마나 될지... 그마저도 다 주고 싶다.’

딸이 잠든 밤, 하늘도 차마 숨을 죽이는... 고요한 밤.

할아버지가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두 손을 모은다.

할아버지 오래 살아야 딸 오래 살 수 있음에

하늘 향한 아버지의 기도가 뼈를 애는 듯, 간절하다.

‘저를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게 해 주소서.’




EBS TV에서

07/03/04 淸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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