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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日記)

내가 엄마하께...

 

양지 바른 장독대 옆, 흙 담장이 높다.

단발머리, 코 찔찔이. 겨울 햇살이 따습다.

옹기종기 맞댄 머리. 짧은 겨울 해가 밉다.

틈 비집고 드러누운 삽사리, 개 팔자가 상팔자다.

흙으로 만든 비빔밥, 낙엽 반찬. 깨진 기와 상이 진수성찬이다.

소녀가 분홍 보자기 하나, 허리에 두른다.

‘오늘은 내가 엄마 할래.’ 소녀의 앞치마가 앙증맞다.

‘니가 우째 엄마고, 머리도 안 뽀글한데...’

머시마의 입이 삐죽인다. 소녀가 샐쭉, 한다.

‘글 나, 그럼 니 기다려 봐라.’ 소녀가 男子를 힐끔, 본다.

소녀의 마음에 돌을 던진 사나이, 코 찔찔 이다.

‘그래, 저 머시마를 위해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

19공탄이 벌겋게 탄다. 소녀가 이를 악문다.

‘그래, 고대기나 그거나...’ 젓가락 두 가락이 활활, 탄다.

머리에서 지지 직 뽀그작, 한다. 냄새가 고약하다.

‘어차피 인생은... 사랑을 위해선...’ 근데, 뜨겁다.

머리가 옹글라 옹글라, 한다. 소녀의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이다.

폭탄 머리가 하얀 마음을 때린다. 소녀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이기 미친나, 이 지지바야.’ 엄마가 자지러진다.

하늘에서 벼락이 친다. 그날 소녀는 한, 반 죽었다.

하얀 겨울, 파란 멍이 소녀의 가슴에 쌓인다.


세월이 졸라 빠르다. 흐르는 물같이, 쏜살같이...

‘엄마, 내 교복 어때?’ 소녀가 한 바퀴 휘리릭, 돈다.

엄마의 눈에 흐뭇한 미소가 흐른다.

‘내 딸이 저렇게 컷 구나, 그때 나보다 더 이쁘게...’

머지않은 지난날, 아름다운 추억이 안개 되어 흐른다.

‘그 머시마, 뽀글 옆 지기랑 이쁘게 잘 살겠지...’

무심한 바람결이 엄마의 볼을, 스친다.




친구 ‘겨울에는’님의 글에서...

07/02/07 淸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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