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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日記)

첫사랑

 

이맘때다. 소년의 가방이 무겁다.

하굣길이다. 며칠 후면 겨울방학이다.

길가에 소녀가 서 있다. 소녀가 손을 호호, 한다.

양 갈래로 묶은 머릿결(高 1)이 바람에 흩날린다.

노란색 벙어리장갑이 앙증맞다. 이쁘다.

소년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마주친 눈길이 수줍음으로 곱다.

소년이 흠흠, 한다. 소녀의 가슴이 콩콩, 한다.

소년의 밤이 길기만 하다. 억지로, 날이 밝는다.

골목길, 어제 그 시간이다. 눈이 졸라 쏟아진다.

소년이 몇 시간째다. 어둠이 꿈결처럼 내린다.

앙상한 가지들이 눈처럼 하얀 옷을 입는다.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진다. 소녀의 머리채가 나풀한다.

소년이 저~ 한다. 쪽지를 내미는 소년의 손이 떨린다.

소녀의 마음에 물결이 인다. 소년의 다리가 휘청한다.

소녀의 미소가 맑다. 소년이 씨익, 웃는다.

하늘이 가까이 온다. 꿈이 익어 간다.


31년 전, 그날도 오늘처럼 눈이 내렸다.

하늘만큼 땅만큼, 졸라 많이 내렸다.

오늘도

먼 그날처럼

그리움의 눈이 내린다.

 

 

 

 06/12/18 淸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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