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전사령부 예하, 여단 급 부대에 근무하는 김중위는 부대 외곽경비와 안전을 책임지는 경비소대장의 보직을 맡고 있었다. R O.T.C 출신인 김중위는 28개월의 군대생활 중 앞으로 두 달을 남겨 두고 있었다. 두 달 후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 터였다. B.O.Q(독신 장교 숙소)에서 생활하는 동기들과는 달리 김중위는 영외 거주를 하고 있었다.
그날따라 김중위는 퇴근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집에는 시골서 보내 온 토종닭이 따뜻한 국물 속에서 가쁜 숨을 내쉬며 김중위를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소주 한잔의 행복을 생각하며 느리게 가는 시계를 원망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대공초소에 연결된 비상전화가 발악하듯 울리기 시작했다.
“단결! 대공초소 근무병 엄상병입니다. 후문 쪽에서 총소리가 들린 것 같습니다.”
대공초소는 부대의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여 부대에서 일어나는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기에 아주 좋은 자리였다. 깜짝 놀라 튀듯이 자전거를 타고 후문으로 달려간 선임하사가 가쁜 숨을 헐떡이며 전화를 해왔다.
“소대장님. 큰일 났습니다. 최 일병이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습니다.”
순간, 말년에는 낙엽도 피해가라던 선배의 충고가 김중위의 뇌리를 스쳤다. 최일병은 군악대에 소속되어, 몇 달 전에 경비소대로 전입해 온 친구였다. 외동으로 자란 최일병은 처음 면담할 때부터 몸도 허약한데다 특전사에 어울리지 않는 체질로 보였다. 해서, 다른 부대로 전출을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상부에 보고해 놓은 상태였다.
‘M16 자동소총에 의한 총상임. 좌수(左手) 손바닥 중지와 검지 사이에서 손등 쪽으로 45도 기울기로 관통하였음, 사고원인 계속 조사 중’
최초로 참모장에게 보고된 내용의 요지다. 최일병은 운이 좋은 놈이었다. 신기하게도 손은 멀쩡하다는 거였다. 중요한 핏줄이나 근육, 뼈 등에 큰 손실이 없었다. 치료만 잘하면 손의 기능에는 문제가 없다는 거였다. 때는, 여단장이 주요사단의 사단장으로 나갈 것이라는 소문이 공공연히 떠돌고 있을 때였다. 순식간에 전 여단이 비상에 돌입했다. 그 태풍의 눈 속에 김중위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수사기관의 끈질긴 신문(訊問)이 이어졌다. 겁에 질린 최일병은 벙어리가 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묵비권 뭐, 그런 것을 행사했지 싶다. 조사기관에서는 두 가지 상황을 설정하고 있었다. 그 하나는 ‘자해’요, 또 다른 하나는 ‘오발’이었다. 김중위에게 자해와 오발의 차이는 큰 것이었다. 오발일 경우에는 단순 사고처리를 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자해일 경우에는 문제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만약에 자해라고 결론이 나면 김중위도 책임한계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사건의 수사는 여름철 장마처럼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었다. 몇 개의 수사기관에서 각각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발에 의한 사고라고 끊임없이 주장하던 최일병도 시달리다가 지쳐서인지 자해에 가까운 내용으로 진술을 하기에 이르렀다. 김중위의 제대 말년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취업 준비는 고사하고 소, 돼지 누구나 다 간다는 말년 휴가도 그림의 떡이었다.
‘도대체 사고원인을 왜 밝히지 않고 있는 것일까.’
김중위의 지친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전속 부관으로 있는 동기에게 전화가 온 것은 제대를 십 여일 앞둔 어느 날이었다.
“김중위, 지금 바로 참모장실로 와라.”
참모장실에는 관련 부서의 장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엄숙한 표정의 참모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의 조사 내용을 종합 분석한 결과 이 사건은 단순한 실수에 의한 오발임이 밝혀졌다. 부서별 관련 업무에 따라 적절히 사고 조치하도록. 이상.”
참모장은 간단한 지시사항과 함께 꽤 두툼한 보고서를 책상 위에 던지고 방을 나갔다. 아무도 펼쳐보거나 관심을 두지 않는 <총기사건 사고보고서>를 슬며시 당겨본 김중위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사건 개요에서부터 발생장소, 발생시각, 사고원인, 기타 모든 내용이 공란으로 비어 있었다. 다만, 마지막 장에서 결론을 명확히 못 박고 있을 뿐이었다.
‘오발(誤發)’
결재란을 가득 메운 여단장의 서명이 크게만 보였다. 김중위의 동기인 전속부관이 씩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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