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잡기(身邊雜記)

[스크랩] 밭 자랑

淸海 김대성 2006. 10. 2. 17:47

몇 년 전에 집 가까운 곳에 조그만 아파트상가를 하나 마련했다. 그 상가를 장만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가 건물 옥상에 있는 정원 때문이었다. 상가의 위치나 투자가치보다

밭을 만들 수 있는 정원이 있는 것에 마음이 끌렸다. 평소의 꿈이 조그만 땅뙈기라도

얻어 소일거리로 채소를 가꾸어 보는 것이었다.

시공회사가 상가를 지으면서 조경면적이 모자라자 궁여지책으로 옥상을 정원처럼

꾸며 건축허가를 받았다고 한다. 옥상의 반 정도를 정원으로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이름이 좋아 정원이지 소나무와 단풍나무 몇 그루를 제외하고는 별로 쓸모가 없는

잡초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언젠가 상가 입주자 모임 때 정원을 밭으로 만들어서 몇 평씩 나누어 채소라도 뜯어

먹자고 했더니 다들 좋은 의견이라고 동의했다. 그때만 해도 전부 참여할 것 같았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못하고, 지금은 혼자서 30여 평 되는 밭을 갈면서 농사를 짓고

있는데 여간 재미있는 일이 아니다. 근 3년 동안 휴일이면 반바지에 챙 넓은 모자

쓰고 밭에만 매달렸다. 밭도 그런대로 밭다운 모습을 갖추게 되고 나도 어느새

농부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전에 없이 마음도 편해지고 세상 보는 시선도 한결 부드러워졌으며 모든 것을

포용하려는 넉넉함이 생기는 것 같다. 세월의 힘일 수도 있겠으나 농사일을 하면서

변해가는 것이 아닌가 하여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다. 이제는 필요한 농기구도 얼추

갖춰졌다. 일하는 요령도 늘어서 밭일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어쩌다 농사짓는

얘기라도 나오면 슬며시 끼어들어 대화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밭에 매달리다 보면 시간도 빨리 가고 세상 시름 다 없어지니 이보다 좋은 취미생활이

없는가 싶다. 조금씩 변해가는 밭의 모습과 씨 뿌리고 쑥쑥 자라 열매 맺음 보는

재미가 보통 쏠쏠한 것이 아니다. 일이라는 생각보다 즐긴다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정신건강에도 좋고, 자연산 무공해의 신선한 채소를 마음껏 먹을 수 있어

몸에도 좋으니 이것이 바로 일거양득이 아니고 무엇인가.


오늘은 김장 배추 50여 포기와 쪽파를 심었다. 지난주에 심은 총각무의 새싹이

제대로 나오지 않은 곳이 있어 군데군데 새로 보완도 했다. 씨 높이의 약 3배 정도의

흙을 덮어야 하는데 너무 깊게 뿌렸나 보다. 며칠 있다가 가지 나무를 뽑아내고

그 자리에 김장 무만 심으면 겨울 채비도 다 하는 것 같아 마음이 든든하다. 올해는

봄부터 고추, 상추 등 약 20여 가지의 채소를 심어 가족의 식탁을 즐겁고 건강하게

했다. 그래도 남는 자리가 있어서 딸내미 손톱 예쁘게 물들일 봉숭아 다섯 송이까지

심었으니 이 같은 신선놀음이 또 있겠는가.


일하면서 섭섭한 것은 어쩌다 한 번씩 밭에 나와 보는 아이들의 반응이 대수롭지

않다는 것이다. 바람 같아서는 깜짝 놀라고 호들갑이라도 떨면서 감탄도 하면

좋으련만, 이놈들 반응은 늘 시큰둥해서 대단한 일이나 한 것처럼 자랑하는

아비를 무색하게 할 때가 종종 있다. 그래도 밭에서 일하는 남편 모습이 최고로

아름답게 보인다는 집사람 있으니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제멋대로인 땅 곱게 갈고 다듬어 씨 뿌리고 나면 어떤 모습으로 싹 틔워 나올까

하는 마음에 조석으로 들러서 안부를 묻곤 한다. 그러다가 기다리던 새싹들이

파랗게 머리라도 내밀라치면, 새 생명의 탄생에 대한 신비로움과 뿌듯한 희열에

고동치는 심장의 맥박 소리는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병들어 힘없이

시름시름 죽어갈 때는 안타깝고 마음 저리기도 하지만 허리 부러져 고개 숙인 놈

부목 되어 치료한 후 활기차게 살아나는 모습 보는 심정은 뭐라 표현할 수 없이

기쁘다.


작은 곡식 한 톨에도 농부의 손길과 정성이 수십 번 들어 있다는 말을 제대로 실감할

수 없었는데 직접 일을 해 보니까 깻잎 한 잎, 고추 한 개가 그렇게 귀하고 소중할

수가 없다. 자식 키우듯이 공들이는 것이 농사일진대 어찌 한 톨의 곡식이라도 함

부러 하겠는가. 어쩌다 구석에 숨어 있는 작은 생명에 눈길 미치지 않아 병이라도

나면 손길 주지 못하고 정성 부족하여 그런가 싶어 화들짝 놀라기가 일쑤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듯이 튼튼하게 잘 자라는 놈이야 믿음직스러운

것이 당연하지만 늦게 따라오는 놈도 정 쏠리기는 마찬가지다.


작은 밭에도 인간 세상과 같아 나름대로 희로애락이 있으나 저들의 그것은 도전과

응전으로 점철되어 대립과 대결이 최선이 되어버린 인간과는 다르다. 조화와 타협을

바탕으로 한 이해와 공존의 현명함이 있으니 그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의 오묘함에

저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경이롭게도 들고 날 때와 있어야 할 자리를 잘 아는 질서

정연함을 볼 때 그들을 알고 이해하고 순리대로 살아가는 이치를 터득한다면 인간사

모든 것이 평화로울 수 있으리라. 다행히 근래 들어 자연 속에서 그들을 닮고자 하는

사람이 늘어 가고 있음에 일말의 희망을 가져 본다.


요즘은 주5일제 근무의 확산으로 여가 시간이 많아져 휴일 보내는 방법을 제시하는

잡지나 인터넷 사이트도 생겨나는 모양이다. 매주 멀리 가서 즐겨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 아니라면 조그마한 땅뙈기 하나 마련하여 가족과 같이 자연을 벗 삼아 좋은

공기 마시며 휴식하는 것도 새로운 충전의 방법이 아니겠는가.


도심 근교에는 여러 가지 형태의 주말 농장이 있어 마음만 먹으면 큰 부담 없이

좋은 체험을 할 수 있다. 일손 부족한 농촌으로서는 일손 덜어서 좋고 도시민들은

주말이나 휴일 또는 휴가를 이용하여 전원생활도 즐기고 과일이나 무공해 채소를

먹을거리로 쓸 수 있으니 서로 좋지 않은가. 자녀에게 직접 채소를 가꾸게 하고

자라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은 주말농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소득이리라.


복잡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라는 공동체를 사노라면 세파에 흔들리고 그 흐름에

적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때때로 생활의 신선함을 맛보며 자연과 더불어

호흡하고 대화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겠는가. 숲을 벗어나야 산의 모습이 보이듯이

일상에서 한 걸음 벗어나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볼 때 지금의 내 모습 바로 볼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오늘 심은 배추 모종들이 잘 자리 잡고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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