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隨筆)

밥상머리 교육

淸海 김대성 2006. 7. 1. 08:59

<수필 200*14매>

밥상머리 교육



                                                                                                                       김 대 성


 저녁상을 차리면서 집사람이 투덜거린다. 밥상이 워낙 오래되고 낡아서 다리를 고정하는 장치가 고장 났다. 그동안 고친다 하면서 하루 이틀 미룬 게 벌써 해를 넘겼다. 아직 식탁에서 밥 먹는 게 남의 옷 빌려 입은 것처럼 어색하여 늘 거실 바닥에 상을 펴고 식사를 하니까 못 봐도 하루에 한두 번씩은 만나는 밥상이다.

 빛바랜 큰놈 돌 사진에도 등장하는 것을 보면 사용 한지가 벌써 이십 년이 넘었다. 세파에 흔들리느라 이리저리 다닌 십여 번의 이사에도 용케 남아있는 갈색 민무늬에 원형으로 생긴 평범한 밥상이다. 바꿀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미운 정 고운 정 들고 눈에 익어 편안하게 대할 수 있다는 애착 때문에 지금까지 버리지 못하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우리 가족과 희로애락을 같이해오며 웃고 울었던 갖가지 사연 고스란히 담고 있어 쉽게 버릴 수가 없다. 더구나 어렵던 시절 새 상 장만하고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시던 어머님의 숨결과 손때 묻어 있기에 더욱 정이 가는 상이다.



 어느덧 지천명의 나이가 되도록 살면서 낡은 생각 고쳐가며 시류를 쫓아가고자 부단히 노력하였다. 하지만, 어릴 때 몸에 배어 습관이 된 아버님의 밥상머리 가르침은 마음속 깊이 교훈으로 남아 삶을 살아가는 소중한 지침이 되고 있다.

 어릴 때만 해도 모든 것이 부족하고 배고픈 시절이었다. 식사 시간이면 허기진 배 채우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언제 날아들지 모르는 아버님의 담뱃대 때문에 늘 긴장 속에서 밥을 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한 상에 많은 음식을 차려 놓고 연장자가 먹고 나면 장유유서의 순서에 따라 음식을 먹는 ‘상물림’의 형태는 아니지만, 지금은 생각하지도 못할 원칙이 있었다.

 막내인 나는 아버님과 겸상의 영광을 누려 상석을 차지하였고, 형님과 조카들은 큰 상에서 같이 식사를 하였다. 그러나 어머님을 비롯한 집안의 모든 여자들은 따로 둘러앉아 바닥에서 밥을 먹었으니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아버님과의 겸상이어서 반찬 수는 몇 가지 더 많았지만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막내아들 사랑하는 부정(父情) 때문에 담뱃대의 목표가 되기 일쑤였다. 대꼬바리(긴 대나무를 사용해 만든 담뱃대의 끝 부분으로 잘게 썬 담배를 담는 금속 부분)의 응징에, 머리에는 금방 혹이 나고 눈물이 쑥 빠지곤 했다. 그 응징의 대상은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하였다.

 이를테면, 밥 먹으면서 소란스럽게 떠든 다던가, 어른이 손대기 전에 미리 반찬을 먹는 일 등 질서와 관련한 예의범절이 주된 내용이었다. 비록 작은 것이었지만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소양을 길러준 소중한 가르침이었다.



 동, 서양을 막론하고 ‘세 살 때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라는 속담이 있다. 옳지 않은 습관이나 언행은 어릴 때 고치지 않으면 언젠가는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는 뜻으로 습관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강조한 말이다. 결국, 어릴 때 몸에 밴 태도나 품성이 일생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교육과 훈련은 인격형성을 위해 꼭 필요한 조건이며 습관과 버릇이 사람의 됨됨이를 만드는 것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으나 순수한 감성이 살아 있는 어릴 때 밥상머리에서의 가르침과 경험은,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사는 세상살이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고 훌륭한 인격을 갖춘 성숙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근간을 만들어 준다. 더구나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먹는다는 것과 맞물려 있어 감정의 조절까지도 요구되는 것이기에 그 소중함은 더 커지는 것이리라.

 요즘 식당이나 공공장소에 가보면 자식이 무슨 행동을 하든지 방종 하면서 무감각하게 바라만 보는 소위 신세대 부모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이 자식인데 사랑스럽고 귀함이야 오죽하겠는가. 하지만,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에 어떻게 하는 것이 자식을 사람다운 사람으로 키울 수 있는 길인가를 생각해 보는 현명함이 필요하리라.

 다행스럽게도 근래에 초, 중학교에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밥상머리 교육’을 시킨다고 한다. 담임교사가 학생들과 같이 식사를 하며 식사예절에 대해 지도를 하고 웃어른과 식사 실천을 과제로 내 주고 있다. 그 결과 식사예절뿐만 아니라 생활태도 전반에 걸쳐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반응이 나왔다고 한다. 많은 학생에게 바람직한 인성을 갖추게 할 수 있도록 밥상머리 교육을 더 강화한다고 하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성공한 사람들 대부분은 좋은 습관을 가지고 있으며 습관은 어릴 때부터 길러진 것이 많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좋은 습관을 바탕으로 피땀 나는 노력을 하여 성공이라는 열매를 쥐었으리라. 그래서 운명을 바꾸려면 습관부터 바꾸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전에는 골목에 밥상 고치는 분이 간혹 보였는데 요즘에는 고쳐 쓰는 수요가 적어서인지 여간해서는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렇다고 상을 버리기에는 마음이 허락하지 않으니 인터넷 검색이라도 해서 찾아 봐야겠다.

 가끔 집의 애들이, 함 부러 말하고 행동하는 아이들이라도 보면 저희가 보고 배운 것과 다르다 하여 눈살 찌푸리는 모습 볼 수 있어 더 소중한 밥상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