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隨筆)

평양 유감

淸海 김대성 2006. 6. 9. 01:26
 


평양 유감




                                                                                                                     김 대 성


 2005년 8월 23일 오후 9시! 평양 유경체육관! 입추의 여지가 없이 꽉 들어찬 관중 속에서 ‘태양의 눈’으로 시작된 역사적인 조 용필의 평양공연을 보면서 실시간으로 느끼는 감정을 필자의 주관적인 입장에서 서술하는 것임을 밝힘과 아울러, 혹여 다른 느낌으로 보시는 분이 계셔도 관점의 차이려니 하고 넓은 이해를 바라는 바이다.



 평양에서 꼭 한번 공연을 해 보고 싶었다는 조 용필! 음악은 남과 북이 같을 줄 알고 준비했다는 국민가수 조 용필! 그의 공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무리 세월이 흘렀어도, 문화적인 교류의 단절되었던 세월이 길었다 하여도, 우리 민족이 어떤 민족이었던가? 노래 가락 한 자락에 어깨 들썩이며 같이 어울려 춤사위 즐기며 희로애락을 같이 나누며 즐기던 민족이 아니던가! 오죽하면 춤 속에서 나서 노래 속으로 간다고 들도 하지 않았는가.

 나는 지금 조 용필을 연민으로 지켜보고 있다. 그 마음 어떠하였으리오. 경축식에 동원된 잘 훈련된 학생처럼 반응은커녕 미동도 없음이니. 아주 절제 있는 표정과 몸짓, 그리고 그 박수들에 너무나 깊고 크게 패인 문화의 골을 느낀다. 큰 함성이나 괴성들, 또는 여기에서처럼 광적인 열광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흥을 느끼고 신이 나면 노래 따라 박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 통하지 않고 단 한 번 만난 적이 없다 하여도, 사상에 앞서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예술이라는 장르가 아니던가. 더구나 춤과 노래들은 순수한 감성을 바탕으로 한 것이기에 그 느낌이 더욱 가슴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거늘.......



 조 용필의 목소리에 힘이 빠진다는 생각과 느낌은 필자 혼자만의 생각인가. 무대에 있는 배우나 가수들은 관중의 호응과 반응에 힘입어 혼을 쏟고 정열을 토하는 것이 아니던가? 여러분도 노래방에서 느낀 적이 있었으리라. 이 노래가 아니다 싶으면, 또는 노래에 호응이 없으면 뱃심이 빠지던 기억을.......

 절제되고 일률적인 것만을 강요해서 일까? 북에서 요구했다는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간주 부분에서도 묵묵부답이다. ‘꿈’을 지나 ‘그 겨울의 찻집’을 열창하는 조 용필! 보는 필자의 조바심에 불을 지핀다. 아, 큰일이다. 이제 이 정도의 시간이 지났으면 무대와 객석이 일심동체가 되어 같이 호흡해야 하는 것이 통상적인 공연의 흐름이 아니던가?

 닫힌 문은 닫은 사람의 열려고 하는 마음 있어야 비로소 열리는 것이니....... 박수 칠 부분을 미리 알려주어 일방적이고 일률적으로 박수를 강요하던 지난 시절의 무슨 행사처럼 정확하게 박수 칠 곳을 미리 잘 알고 있는 북한 주민들! 때맞추어 부르는 조 용필의 노랫말이 주는 의미가 심각하다.

 ~ 왜 생각이 나는 걸까.

 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대 나의 사랑아!

 지금 가수의 심정을 그대로 웅변으로 말 해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그래! 나 같은 범인이 무엇을 알겠는가? 조 용필 같은 선구자들 있어 마음의 문을, 교류의 물꼬를 터주는 것이 아니던가. 반세기 닫혀 있었던 그 마음, 닫힌 그 문이 그렇게 쉽게 열리겠는가! 아마도 저분들도 마음속, 그리고 끓는 그 핏줄 속에는 같이 공유하고 같이 느끼고 있음이니라....... 고동치는 맥박을, 솟구치는 감정들을 잘 억제하고 감추고 있을진저! 아마도 감정을 표출하는 방법들을 모르고 있음이니라!

 익숙하지 않은 음악과 공연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있었음이라.......  흔들리는 어깨 애써 부여잡고 절제하고 있으리라! 잘 들어주고 엄숙히 경청해 주는 것이 무대 위의 가수에게 주는 최상의 예우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지금 느낌이 어떠하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여기처럼, 이렇게 떨려본 적이 없단다. 어렵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저네들은 알고나 있을는지....... 처음으로 이렇게 긴 박수를 받아 봤다며 다시 한번 박수를 유도하는 조 용필! 완숙한 무대 매너와 그 여유로움이 과연 국민가수로서의 손색이 없음이라! 그래! 조 용필 파이팅이다! 지금 힘들고 어려워도 먼 훗날 그대의 걸음 평가받는 날이 분명히 있으리니!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제 시작인 것을....... 작은 땅덩어리 반으로 나뉘어 다른 민족처럼 살고 있었지만, 그네들도 같은 조상, 같은 핏줄로 이어져 있음이니, 언젠가 얼싸안고 하나 되는 날 곧 있지 않겠는가!

 이국땅 삼경이면 밤마다 찬 서리고

 어버이 한숨쉬는 새벽달일세.

 마음은 바람 따라 고향으로 가는데

 선영 뒷산의  잡초는 누가 뜯으리.

 ‘한 오백년’에 이어 ‘간양록(看羊錄)’의 구슬픈 가락이 토해내듯이 흐르고 있다. 화면 가득히 흐르는 굵은 빗줄기의 구성도 조화롭다. 저 가락 내 맘 같아 님들의 맘 깨우소서! 진열된 밀랍 인형처럼 일률적이고 굳어 있는 주민들의 얼굴들이 클로즈업 된다. 조심스럽게 볼륨을 줄인다. 채널 돌린 필자의 경솔함을 가슴 치며 후회할 반전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우리는 한 민족이었다고! 그 끓는 피 뜨거웠다고! 같이 얼싸안고 흥에 겨워 눈물 흘렸다고! 역시 우리는 하나였다는 그 소식 듣고 싶음이라!




05/08/23